Chapter 37
1.
“흐읍!”
숨을 들이키며 방패를 내지른다.
근육이 수축하며 폭발적으로 휘둘러진 방패가 방금 나를 습격했던 오토마타의 목을 후려쳤다.
콰직!
단숨에 박살이 나며 머리가 분리되는 오토마타.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오토마타를 내려다보며 나는 짜증난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기분 더럽네요.”
[저, 저게 뭐죠? 방금 탐지기에는 어떤 신호도 잡히지 않았는데. 갑자기 어디서-]
“일반적인 오토마타와는 가동 방식이 다른 개체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속성’ 자체가 변질된?”
[반전 상태의 오토마타, 라고요?]
신비에 대한 지식 정도는 가지고있던 히마리였기에 단숨에 ‘테러화’에 대한 사실을 짐작하였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히마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큰 결점이었다. 테러화 병사가 기존 탐지기에 잡히지 않는다니 상황이 복잡해졌다.
거기다.
“이것들한테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요. 뭐라고 해야할까, 이미 ‘죽어버린’ 것 같은 느낌?”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듯한 감각은 있다.
하지만 하나같이 생자(生者)를 상대하거나, 평범한 사물을 인지하는 듯한 감각이 아니다.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될 것, 이 세상에 없던 것.
혹은 이 세상에서 죽어 없어진 것.
그런 존재와 상대하는 듯한 기분이 맴돌았다.
신비의 반전인 ‘공포(Terror)’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주할 때마다 내 본능을 자극하는, 기이한 감각마저 느껴진다. 이는 내 감각이 일반적이지 않은 탓일까.
‘모르겠는데.’
아까 히마리가 듣지 못했던 주파수도 그렇고,
저 테러화 병사도 마찬가지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거기다.
“이곳은 애초에 적의 본진이었군요.”
[……이길 수 있겠어요?]
이미 나는 적들의 함정에 빠져버렸다.
그 증거로 내가 위치한 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수많은 테러화 병사들이 보였다.
어림잡아도 수십은 되어보이는 숫자.
그에 나는 히마리의 물음에 잠시 침묵하다, 이내 답했다.
“이깁니다.”
명쾌한 대답이었다.
2.
힉스, 데카그라마톤, 그리고 테러화 병사.
이곳에 즐비하던 카이저 코퍼레이션의 계열사들과 한없이 수상하던 의뢰서까지.
참 꼼꼼하게도 준비해놓은 함정이라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함정인걸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정보를 드러내고, 기다렸다는 듯이 테러화 병사들을 내보내 싸우게 한다.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한 시험이다.
누가? 왜 나한테? 와 같은 의문은 필요없었다.
게마트리아가 언제는 이해할 수 있던 집단이었나.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듯, 그들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은 나를 탐구하기 위해 이러한 일을 벌였다.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로 그놈들의 목적을 알고 싶었다.
그러니 한번쯤은 놀아나주도록 하자.
“해보자고.”
삐이이-
다시금 울려퍼지는 정체 불명의 주파수.
허나, 이번에는 전과는 달리 히마리에게도 들렸는지 놀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고자 했다.
[히이로! 방금 그 소리……!]
치지직!
갑자기 통신이 끊어져서 말할 수 없게 되었지만.
히이로는 인이어를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방패를 치켜들었다. 웹 슈터를 사용할까도 싶었지만 이번에는 오직 방패만으로 전투를 치러보고 싶었다.
단순한 실험을 위해서.
기이잉-!
구구구궁-
오직 명령만을 수행하는 오토마타들이 일제히 히이로를 올려다보며 총구를 치켜세웠다.
헛웃음을 흘리며 정면을 향해 도약하자, 곧바로 쏘아지는 총알 세례.
투다다다다다─!!!
팅팅팅! 하며 방패에 무수한 총알이 튕겨나는 소음이 들려온다.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한 방패가 굳건히 히이로를 총알로 이루어진 비에서부터 지켜냈다.
건물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앞으로 구르며 낙법을 취하는 히이로. 이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오토마타를 향해 방패를 휘두르자-
콰앙─!!
심장부에 틀어박힌 방패. 아니, 그걸 넘어서 아예 반으로 쪼개버렸다. 이미 근력마저도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히이로의 공격은 아무리 테러화가 되었더라도 평등하게 갑피를 파괴시켰다.
쇄애액-!
쾅! 쾅! 쾅!
이내, 곧바로 방패를 날려보내며 인근에서 총을 발사하려던 오토마타 셋을 무력화시키는 히이로.
제자리에서 강하게 발을 박차며 하늘로 도약한 히이로가 방패를 회수하기 무섭게, 다시금 지면에 있는 오토마타를 향해 방패를 발사한다.
그 와중에도 히이로를 노리고 쏘아지는 총알들이 있었으나, 테러화된 오토마타가 아닌 총알의 궤적은 초감각으로 읽어낼 수 있었던 히이로에겐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어느새 열에 가까운 숫자가 쓰러지고, 히이로는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듯 한차례 속도를 가속시켰다.
쾅! 쾅! 쾅! 쾅!
단 한번의 일격이 가해질 때마다 폭발하는 듯한 충격음이 공간에 울려퍼진다.
방패로 가해진 일격이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오토마타의 변질된 속성을 무시하고 내부를 부순다.
“흐읍─!!”
빠르게 줄어드는 체력을 인지한 히이로였지만, 그녀는 이대로 멈추지않고 더욱 빠르게 움직이며 육안으로 테러화된 병사들의 움직임을 시야에 넣고 빠르게 판단해 공격순서를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기관총, 바주카포, 그리고 방패.
각기 다른 형태의 테러화 오토마타가 각자의 자리에서 타이밍을 노려 히이로를 공격한다.
하지만 히이로에겐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그녀가 새로 만들어온 방패와, 그녀의 초감각.
두 개의 능력이 합쳐지며 실크 때와는 다른 방어력 측면에서 한없이 높아진 존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총알이 날아올 때면 방패로 막고,
바주카포가 쏘아지면 피해내거나 방패로 막고,
똑같은 방패로 막아내면 자신의 방패로 깨부순다.
상대가 아무리 반전상태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대응 방식은 기존의 생각했던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감각에 잡히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히이로 또한 저들의 결점을 금방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아직 집단사고가 부족하다. 그리고 약해.’
게임에서 등장했던 테러화 병사의 보편적인 예시인 ‘유스티니 성도회’의 묘사와는 한참이나 다르다.
테러화 초기의 모델이라서 그런걸까?
그것도 아니면 아직 기술이 완전하지가 않다?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히이로가 느낀 것은.
“간단하네.”
수많은 전장과 경험, 그리고 더욱 강화된 능력을 얻어낸 히이로에겐 한없이 나약한 적들이었다.
히이로는 마지막 남은 테러화 오토마타를 방패로 머리를 날려버리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처음 느꼈던 위기감, 감각에 잡히지 않는 적.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
순간이지만 직감이 들었다.
언젠가, 나중이 되어서 지금보다 더 강력한 ‘테러화’ 병사가 나타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미래에 있을 강대한 적 하나가 생겨났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나는 새로운 목표를 얻었다.
“…더 강해져야 되겠어.”
무력. 압도적힌 힘이 필요해졌다.
3.
모든 테러화 병사가 박살나고, 거칠게 숨을 고르고 있을 무렵이었다.
짝- 짝- 짝-
어디선가 듣기 거북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나는 다시금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감각에 잡히지 않았는데?
망할, 연속 두 번으로 이러는건 좀 아니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린 휙 나는, 이내 그것을 목격했다.
“…시발.”
새카만 얼굴에 하얀 금이 나있는 정장의 사내.
머리를 두 개나 달고있는 연미복 차림의 마네킹.
각각 손에 액자와 지팡이를 든 머리없는 존재까지.
게마트리아.
그리 불리우는 존재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 와중에 샴쌍둥이마냥 두 개의 머리를 달고있는 존재- ‘마에스트로’는 나를 바라보며 찬사를 보내오듯 끊임없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왜 저래. 미친놈이.’
그리곤 이내.
“멋지군! 근원도, 한계도 알 수 없는 불가해한 힘을 지닌 ‘이름 없는 자’여! 그대의 신념은 반전된 공포에서도 꺾이지 않는가……! 비록 미완성에 불과했으나 나의 작품을 간단히 이겨내는 그 모습……!”
“아아, 아아아…! 그대는 나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안겨주는 ‘뮤즈’와도 같다……!”
다른 이들이 입을 열기도 이전에 마에스트로가 정면으로 나서며 양팔을 쫙 벌리며 소리쳤다.
마에스트로는 나무 인형 특유의 끼긱, 소리를 내며 나에게 부담스러운 눈빛- 애초에 눈빛을 구분할 수도 없지만 아무튼 시선을 내게 보내왔다.
내가 표정을 팍 구기며 본능적으로 방패를 날리려던 그 순간-
“큭큭큭. 이런 상황을 만들게 되어 실례했습니다, 실크. 저희는 그저 인사만을 드리러 왔을 뿐입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검은머리의 존재,‘검은 양복’이 내 행동을 저지하듯 앞으로 걸어나왔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인사? 날 공격해놓고 인사가 나오냐?”
“표현은 어찌되든 좋지 않습니까? 중요한건 우리가 당신과 ‘대적’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지요. 아니, 오히려 협력하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탐구하고 싶습니다.당신은 매우 흥미로운 존재이니 말이죠. 아마분명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뭐라는-”
이어진 검은 양복의 설명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어른이되 어른이 아니고, 학생이되 학생이 아닌 존재. 자신의 신비를 잃어버린 영웅. 실로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름 없는 영웅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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